고추장.된장.청국장등

건진 메주에 보리죽 넣으면 ‘꿀된장’

수원아지매* 2010. 4. 27. 10:41

건진 메주에 보리죽 넣으면 ‘꿀된장’

이영미의 제철 밥상 차리기<6> 간장의 부산물, 된장

한두 달 전에 담근 간장은 안녕들 하신지. 이 연재를 처음 시작하면서 아파트 베란다에서도 간장 담그기를 할 수 있고, 소금물에 메주만 띄워놓으면 끝나는 아주 간단한 일이라고 한 적이 있다. 물론 신경은 좀 써주어야 한다. 계속 들여다보고 제대로 익어 가는지 점검해야 하고, 무엇보다도 베란다 창문을 종종 열어서 야외 장독대와 비슷한 조건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간장을 담근 지 4~6주가 되면 메주를 건지고 된장을 담글 때다. 일반적으로 메주를 건지는 시기가 4~6주 정도이기는 하지만, 꼭 그래야만 하는 건 아니다. 메주를 일찍 건지면 된장이 맛있지만 간장이 맛없고, 좀 오래 놓아두면 간장 맛이 좋아지지만 메주에서 맛이 다 빠져버렸으니 된장 맛이 떨어진다. 무엇보다도 날이 따뜻해지면 간장이 상할 우려가 있는데, 요즘처럼 추운 봄이라면 조금 더 두어도 될 듯하다.

된장은 간장의 부산물로 만든다. 하지만 된장의 매력은 남달라서 간장이 그것을 대체할 수 없다. 마치 막걸리가 청주를 만들고 난 찌게미를 막 거른 것(그래서 술 이름이 막걸리다)이지만, 청주가 갖지 못한 매력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된장을 담그는 가장 쉬운 방법은, 간장에서 건진 메주를 그대로 항아리에 넣어 두는 것이다. 이미 소금물에 불을 대로 불은 메주는 손쉽게 으깨어지는데, 그것을 조금 더 고르게 으깨어서 항아리에 꼭꼭 담고 표면에 소금을 뿌려 다독여 놓는다. 공기가 통하는 유리 뚜껑을 덮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리얼리? 이렇게 간단해? 정말이다. 된장 담그기는 이것으로 끝이다. 이미 간이 잘 맞는 소금물에 충분히 불은 상태이므로 더 이상 소금을 첨가할 필요가 없다. 간장 만드는 과정에서 상하지 않았으면 된장 역시 그 정도가 적당한 것이다. 표면에 소금을 뿌리는 것은 공기 접촉면에서 혹시라도 곰팡이 같은 것이 피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지 간을 더하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간장에서 건진 메주로만 담근 된장은, 들척지근한 맛이 떨어진다. 이미 콩의 감칠맛이 간장으로 우러나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좀 더 맛있는 된장을 만들기 위한 방법은 곡물을 새로 넣어 된장을 담그는 것이다. 보리죽을 쑤어 섞거나 흰 콩을 불려 삶아 넣으면, 새롭게 들어간 곡물 덕분에 된장 맛이 좋아진다. 달착지근한 맛으로는 보리죽이 윗길이나 자칫 싱겁게 담그면 여름에 끓어 넘치거나 시큼해지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메주를 하듯 콩을 삶아 으깨어 넣는 것이 무난한 방법이다. 이때에는 새 재료가 들어간 만큼 소금을 첨가해야 한다.

이렇게 새로운 재료를 첨가하면 맛은 좋아지지만 초심자의 경우는 간을 맞추는 것이 힘들어진다. 이때 요령은 간장에서 건져서 아무것도 섞지 않은 메주를 조금 떼어 놓았다가 곡물을 다 섞은 후 소금을 더 넣을 때에 두 개를 비교하며 입에 넣어보면 간 맞추기가 좀 쉽다. 그래도 혹시 된장이 상할까 봐 불안하면, 메주가루를 사다가 함께 섞어 넣는다. 메주에 있던 효모에다 메주가루의 효모를 더 첨가하는 셈이니, 아무래도 상할 가능성은 작아진다.

된장이 질척하기를 바라면 담글 때에 된 죽처럼 물을 많이 넣어야 하지만 초심자는 위험한 방법이다. 물이 많을수록 맛이 싱거울수록 상할 위험성은 높아진다. 따라서 된장이 질척할수록 된장을 짜게 담가야 한다. 그래서 초심자라면 보통 된장 정도의 뻑뻑한 질감이 되도록 물을 넣는 것이 좋다. 된장이 익는 동안 햇빛에 표면은 다소 건조해지는데, 이렇게 되면 거의 상하지 않는다.

막장은 간장에서 건진 메주를 쓰지 않고 생 메주만을 쓴 된장을 의미한다. 마른 메주를 굵게 갈아 물에 불리고 고춧가루나 고추씨 간 것을 조금 섞어 담근다. 간장을 빼지 않았으니 된장 맛은 아주 들척지근하고 얕은맛이 강하다. 대신 오래오래 끓이는 된장국에 쓰면 맛이 너무 얕고 자칫 떫은맛이 나기도 쉽다. 그래서 막장은 살짝 끓이는 찌개나 쌈장에 어울린다. 어쨌든 새로운 곡물이나 생 메주를 쓰는 된장은, 경험자가 해볼 일이다. 초심자는 우선 간장 뺀 메주로부터 안전하게 시작하는 것 좋다.

된장은 담그기는 어렵지 않다. 그러나 그 뒤의 숙성이 길고 지루하니, 그것을 참는 것이 더 힘들다. 막장은 숙성이 빨라 너덧 달이면 먹기 시작한다. 하지만 간장을 뺀 메주로만 담근 된장은, 두 겨울 정도는 나야만 그때부터 먹을 만하다.

십수 년 전 내가 처음 된장을 담갔을 때에도, 시어머니 말씀대로 간장 뺀 메주를 그대로 항아리에 담아놓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해 늦가을에 궁금해서 된장을 조금 꺼내 맛을 보았는데 짜기만 하고 정말 맛이 없었다. ‘이걸 고추나 깻잎을 박아 장아찌 만드는 데에 써버려야 하나?’ 하고 망한 된장 처리에 골몰했다. 어느 날 시어머니께 상황을 보고하니 건드리지 말고 그대로 두 겨울만 묵히라고 하신다. 그런데 정말 두 겨울이 지나고 3년째가 되자 신기하게도 그것이 제대로 된장 맛을 내기 시작했다.

다른 곡물을 안 넣었으니 달착지근한 맛은 떨어지나, 시원하고 깊은 맛을 내는 된장이 완성된 것이다. 그러니 괜히 조바심 피운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세상이 두 쪽 나도 나무가 나이를 먹어야 꽃을 피우듯, 된장도 묵을 만큼 묵혀야 제 맛이 드는 것이었다.

그제야 나는 왜 공장에서는 집 된장 같은 맛을 만들 수 없는지 알았다. 긴 숙성을 하려면 숙성 장소와 노동력 등을 많이 필요로 하니 공장에서 이 방식으로 수지 타산을 맞추기는 힘들 것이다.

집 된장은 아무래도 공장에서 만든 된장보다 달착지근한 맛이 떨어지고 다소 쌉쌀한 맛도 강하다. 이 문제는 국을 끓일 때에 멸치나 고기를 좀 많이 넣으면 해결된다. 쌈장 만들 때에도 콩가루·미숫가루·멸치가루 등을 첨가하여 맛을 낸다. 대신 된장의 깊은 맛과 향은 어디 공장제 된장과 비교할 수 있으랴. 그건 인간의 손재주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 세월이 만들어낸 맛과 향취다.